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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 유작 앨범 Chet Baker - My Favourite Songs (The Last Great Concert)

음악 호부로

by 쿨리버 2024. 8. 3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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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베이커의 유작 앨범이자 마지막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
독일 하노버의 'Funkhaus' 공연 녹음.
1988년 지구레코드 발매반으로 음질은 훌륭하다.
쳇의 속삭이는 음색이나 처연한 특유의 트럼펫 질감, 오케스트라, 빅밴드까지 스튜디오 앨범이라고 믿어도 될 만큼 녹음은 잘 되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2주전 그렇게 마지막 관객과 만나고 그는 세상과 등을 졌다.

그의 죽음을 모르고 앨범을 듣는다면 앨범 내에서 죽음의 색채를 찾아 보기란 쉽지 않다.
아직 트레이드 마크인 트럼펫 음색과 많이 노쇄해졌지만 혼을 담으려 애쓰는 그의 목소리까지 공연 당시에 죽음을 생각했다는 느낌을 떠올리기는 힘들었다.
추락사 그리고 단순 사고사라.
앨범으로 판단하건데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한건 아닌것 같다.

하지만.
마약으로 얼룩진 그의 인생을 보면 마약이 정신을 지배한 탓 일지도.
한번 시작하면 절대 끊을 수 없다는데
젊은날의 그가 선택한 마약으로 인한 인생의 마침표라면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르겠다.

맨 처음 그를 접한 앨범 'Chet'
인생 명반 중 한장이다. 비오면 무조건 떠오르는 앨범.

 

 

다음은 'Chet Baker - My Favourite Songs' 앨범 자켓에 실린 글이다.

세상을 떠나기 2주일 전에 레코딩된 쳇 베이커의 기념비적인 앨범

- My Favourite Songs -

쳇 베이커는 결코 최고의 테크니션은 아니다. 지난 재즈 1백년사를 돌이켜보면 그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지닌 트럼페터를 얼마든지 많이 찾을 수 있지만 쳇 베이커만큼 독창적인 음색을 구사란 연주자는 그리 많지 않다. 깊이 생각에 잠긴듯한 그의 트럼펫 연주는 매우 서정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으며, 이와 함께 단순하면서도 어설픈듯한 보컬은 쳇 베이커의 인기를 높이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는 마치 트럼펫을 연주하듯이 노래했고 노래하듯이 트럼펫을 연주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쳇 베이커만의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1929년 12월 23일 오클라호마주 예일에서 태어난 그가 처음 알려지게된 것은 23살때인 1952년 게리 멀리건 쿼텟(Gerry Mulligan Quartet)에 사이드맨으로 참가하면서부터이다. 당시에 발표한 앨범 「My Funny Valentine」 은 전통적인 리듬악기인 피아노가 제외된 특이한 악기구성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지만 게리 멀리건이 마약소지혐의로 구속되면서 이 쿼텟은 곧 해산되고 말았다. 그 후 쳇 베이커는 피아니스트 러스 프리만(Russ Freeman)과 함께 자신의 쿼텟을 조직, 녹음과 연주의 양분야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펼침으로써 명성을 쌓아나갔는데 이 시기의 작품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그의 내면적인 솔로연주에는 도회적인 고독감 같은게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몸속에 침투하기 시작한 마약은 정신과 육체를 나날이 어둡게 했고 쳇 베이커는 이름을 재즈계에서 점차 잊혀지게 만들었다. 60년대 중반까지 레코딩한 모든 연주는 오직 마약을 살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으면 여러 차례에 걸쳐 체포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던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깡패들에게 테러를 당해 이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을 때 그의 인생은 거의 좌절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처럼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치기에는 아직 세상에 알리지 않은 음악적 재능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었다. 마약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연주를 시작한 쳇 베이커는 육체적으로 매우 쇠약한 상태였지만 모든 것을 초월한듯한 성숙한 음악성을 과시하면서 특히 유럽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고 드디어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새로운 정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동안의 역경을 극복하고 다시 등장한 그의 연주스타일은 과거 게리 멀리건이나 러스 프리만과 함께 활약하던 시절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 주었다. 마약과 공포, 감옥생활, 매스컴의 혹평에 시달린 모습, 그리고 마약중독상태를 극복한 고통의 세월이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있었던 것이다.

지난 1988년에 발매된 이 앨범은 쳇 베이커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2주일 전에 레코딩된 역사적인 음반이다. NDR 빅밴드와 하노버 방송관현악단이 협연한 이날의 연주회에서 그가 들려준 보컬과 트럼펫 솔로는 완벽의 경지에 도달해 있으며 녹음기술상의 문제에 있어서도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쳇 베이커와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오래전부터 꿈꾸어왔던 NDR 방송국의 감독겸 제작자 쿠르트 기제(Kurt Giese)는 이 앨범이 녹음될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 나는 망설이지 않고 모든 계획에 착수하기 시작 했다. 세부적인 공연내용은 이틀에 걸쳐 준비되었는데 첫째날은 리허설, 둘째날은 공연일로 예정되었다. 공연계약서가 작성되었고 연주될 음악의 편곡도 끝냈다.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리허설을 위해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연주자, 엔지니어가 스튜디오에 모였다. 그런데 쳇 베이커가 도착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솔로이스트 없이 리허설을 시작했고 녹음된 테잎에 대한 세부적인 조정을 끝내고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쳇 베이커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호텔에서 전화를 건 쳇 베이커는 스튜디오의 정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들여보내주지 않아서 그냥 돌아왔다고 불평했다. 15분이 지난 후 그가 도착 했다. 악보를 대강 훑어보고 나서 녹음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잠깐 들어본 후 그가 트럼펫을 부는 순간 우리의 걱정은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의 음악은 마술이었다.
넓은 스튜디오에 적막하게 울려퍼지는 쳇 베이커의 트럼펫 - 그 신비로운 소리에 의해 오래된 스탠다드 넘버들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듯했다.
이튼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스테이지는 두개의 오케스트라로 꽉 들어찼고 그 사이에 홀로 서있는 쳇 베이커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그날의 그를 위한 시간, 그를 위한 공연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쳇 베이커의 마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동안 그가 부른 수많은 을 들었지만 그날의 연주는 더욱 아름답게 들렸다."

이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쳇 베이커의 음악과 인생은 다시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는 여러해 동안 유럽 여러나라를 전전하며 보냈던 방랑생활을 청산하고 파리근교에 정착할 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2주일 후 쳇 베이커는 그가 묶던 호텔 2층에서 떨어져 죽은 시체로 발견됐다. 암스텔담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사고사 (死)로 처리해 버리고 말았지만 사인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앨범만이 고독하게 살다 간 한 남자의 유언처럼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 Jazz De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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